1960년 대 중반 부터 처음 으로 록이 시작 되어 현재까지 진행
한국 록은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장르 중 하나로,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의 음악이 있지만 대부분의 한국 록은 서양의 록 음악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한국의 역사는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노래로 표현하는 문화가 확산되었습니다.
1970년대부터는 그래도 상황이 나아져서, 중류층의 가정에도 '전축'이 조금씩 보급되기 시작했고 빽판이라고 불리던 불법복제 해외음반들이 유통되기 시작했으며 신촌과 명동 등지의 음악다방에서 DJ들이 록과 팝음악을 트는 게 유행하면서 한국에서도 조금씩 록음악 팬들이 많아지고 록음악 문화의 저변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70년대 초중반에 록음악을 듣고 자란 한국의 록키드들이 대학생이나 성인이 되어서 70년대 후반~80년대에 열풍을 몰고 온 '록 그룹사운드'의 주력 멤버들이 되었다. 이렇게 서구의 원조 록음악을 들을 기회가 이전보단 훨씬 많아지고, 대학가 그룹사운드를 중심으로 록뮤지션 들도 많이 생겨났지만 정부의 검열은 여전히 엄격해서 자유로운 창작활동에는 장애가 많았다. 물론 대놓고 밟기는 어려웠다.
이후 1980년대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밴드 시나위, 백두산, 부활, 산울림,들국화,들국화 도 데뷔를 하게 되었고 이들은 80년대 한국 록밴드 3 대장으로 불리며, 인기를 얻고 있었다. 대학가요제 쪽에서도 역시, 마그마 뒤를 이을 록밴드들이 주목을 받기도 하였으며 87년에는 티삼스, 88년에는 무한궤도 가 주목을 받았다.
1980년대는 록밴드들이 지상파 TV나 라디오 음악 순위 프로그램의 정상권에 자주 진입했고, 심지어 가요톱 10 골든컵을 더러 수상할 정도로 록음악이 한국 대중음악의 주류의 위치에 제일 가까이 근접했던 시기였다. 1980년대는 대중문화와 프로스포츠를 장려해서 검열도 과거 박정희 정권 때에 비해서는 상당히 완화되었기 때문에 록 음악같이 자극적인 콘텐츠도 널리 지상파에 나오는 것이 가능해졌던 것도 록 음악이 과거보단 인기를 얻게 된 하나의 원인이었다.
이후 1970년대에는 서양의 록 음악에 영향을 미치고 경쾌한 비트와 노래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정전되면서 새로운 장르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일본의 도시팝과 최고의 음악, 그리고 국내의 포크 음악 등이 결합되어 새로운 스타일의 한국 록이 형성됩니다.
이후 1990년대에는 대중적인 팝과 락 스타일에서 야외에서, 블라디 록과 얼터너티브 록 등의 새로운 스타일이 나타났습니다. 2000년대에는 대중적인 K-pop의 기술자로 인해 한국 록은 상대적으로 부진한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한국 록을 사랑하는 최근의 노력 덕분에 현재는 다양한 스타일과 장르의 한국 록이 존재하며 여전히 표면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밴드 붐 이후로 대중들에게 록 음악이 익숙해진 일본에서는 그 흐름이 그대로 이어지면서 1990년대 J-Rock이 최전성기를 맞은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90년대 들어서 서서히 불씨가 꺼져가고 있었다. 주목받은 신인 록밴드 가수로는 N.EX.T, 윤도현, 김경호, 걸, 이브, 노브레인, 크라잉넛, 크래쉬 등 80년대에 비교하면 양적으로는 크게 밀리지 않았다.
한국 대중음악이 댄스음악을 받아들여 인기를 얻고 있던 시점에 수많은 댄스그룹을 제치고 1위를 달성한 걸이 있었고 넥스트는 애니메이션 음악을 담당하면서 외국의 음악잡지등에서 극찬을 받기도 하였으며, 김경호는 외국의 록보컬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가창력과 무대매너로 호평을 받았다.
기대주로 불리던 윤도현 밴드 역시도 4집이 입소문을 타며, 재결합을 계획하기도 하였다. 90년대에는 이들 외에도 선배 밴드들이 다시 새로운 전성기를 맞기도 하였는데 시나위 출신이었던 김종서는 솔로로 컴백하여 큰 인기를 얻었으며, 시나위는 김바다를 영입하여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부활 역시도 새로운 보컬 박완규를 영입하여 반등의 기회를 보고 있었다. 다만 의견충돌로 인하여 김태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박완규는 부활을 떠나게 된다. 1990년대 한국 록씬에서도 이를 상업적으로 의식하여 비교적 전통적인 당대 록 사운드를 선보이려 했던 1970, 80년대에 비해서 전형적인 발라드 형식이라서 슬프지만 나름 웅장하면서도 거친 록 음악 요소를 가미한 소위 '록 발라드'라 불리는 한국만의 짬뽕음악들이 난무하였다.
대중적으론 한층 더 어필하기 쉬웠지만 장르적 특색과 음악성에 있어서 독이 된 것이다. 이는 1990년대 한국의 록 음악이 1970, 80년대 록 음악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예술적으로 저평가를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2000년대부터는 록 음악에 대한 관심이 1990년대보다도 훨씬 더 사그라들게 된다. 이 당시 꺼져가는 락을 멱살 잡고 올린 가수가 김경호이며, 성대결절 이후 활동을 중단한 후부터는 락이 다시는 살아나지 못하게 된다.
다만, 인디에서는 약간 이야기가 다른데, 삐삐밴드 를 시작으로 90년 대 노브래인 이 이 등장하면서 인디에서는 그나마 저항정신을 노래하는 한국 특유의 펑크 록 무브먼트인 조선 펑크가 싹트기 시작한다. 1999년쯤에는 1세대 조선펑크 밴드들이 인디씬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렸으며 크라잉넛 의 말 달리자가 히트하면서 인디에서나마 꾸준히 수요가 생기나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한국 록 아티스트들의 현실도 암울하지만 해외 유수의 록 아티스트들에 대한 한국 대중음악 소비자들의 인지도 역시 처참한 수준이다. 그나마 인지도가 높은 록밴드는 단연 린킨파크,뮤즈를 들 수 있다. 그나마 린킨 파크, 노엘 갤러거 뮤즈, 그린데이 의 인기는 10대 층에서 나날이 상승 중이다.
또한 현재 세계에서 가장 공연 수입이나 앨범 판매 수입이 높은 밴드 중 하나인콜드플레이의 경우도 내한 당시 수분만에 전석이 매진될 정도의 인지도는 있지만 세계적인 인지도에 비해 한국 내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한 커뮤니티에서는 '콜드플레이가 누군데, 사람들이 이 난리 영광임 솔직히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나 유명한 가수가 좋아한다고 공연장 간다니까 괜히 유행인 거 같아서 분위기 타는 거 아님이라는 글이 올라올 정도이다.
하지만 보다 마니아틱한 장르들의 밴드는 록 발전에 끼친 영향력에 비해 한국에서의 인지도가 매우 낮다. 2000년대 초반 록씬을 강타한 장르들 중 하나였던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밴드들의 경우는 인지도가 바닥을 기어다닌다. 일례로 교보 문고 본점 음반 판매 코너에서 그나마 한국내 인지도가 높은 편인 악틱 몽키즈 의 앨범은 1집부터 5집까지 재고가 아예 없는 수준이다.
악틱 몽키즈는 런던 올림픽 당시 오프닝 공연을 했던 밴드이며 록 페스티벌을 통해 한 차례 내한공연까지 했다. 개인적으로 블랙홀에* 너무 긴 외로움에서 를 특히 좋아합니다.. 대표곡. 깊은 밤의 서정곡. 너무 긴 외로움에서. 마지막 일기. 하늘로 흐르는 길. 삶. 겨울 풀잎. 고란초의 독백. 내 곁에 아픔이. 등등